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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삼봉 |
|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한가운데 세개의
봉우리가 솟아있다. 가운데 봉우리는 늠름한 장군처럼 위엄 있는 자태를
하고 있는데 이를 남편봉이라 부르고 그보다 좀 작은 북쪽 봉우리는
처봉, 남쪽 봉우리는 첩봉이라 부른다. 이 삼봉 가운데 처봉은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모습을 하고 있고 첩봉은
아기를 밴 모습으로 남편봉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 선생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시절 이곳에서 청유하였다고 전해지는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매년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소년 정도전이「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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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 |
| 도담삼봉 음악분수대에서 300m 정도 올라가면 전망대를 지나
수 십 척에 달하는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 나타나는데 신선들이 드나들고
천상의 선녀들이 하늘하늘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노래를 불렀음직하다.
석문 우측 아래에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굴속에 깔린 암석은 아흔
아홉 개의 논다랭이를 이루고 있다. 물이 담겨져 있어 농촌의 한적한
계곡의 논두렁을 연상케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마고할미가 하늘나라에서 물을 길러 내려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려서 비녀를 찾으려고 흙을 손으로 판 것이 99마지기의
논이 되었는데 비녀를 찾지 못한 논다랭이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비녀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며 농사를 지었다. 그 논을 옥전(玉田)이라
한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던 마고할미는 일생을 이곳에서 보내다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서 바위 가 되었다. 지금도 긴
담뱃대를 물고 술병을 들고 있는 마고할미의 형상이 바위에 남아있다.
석문에서 상류로 조금 더 올라가면 자라의 모습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듯한「자라바위」를 볼 수가 있으며 석문 부근의 절벽에는
측백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 주변경치를 사시사철 푸르게 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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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봉 |
구담봉은 깎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절벽 위의 바위가 흡사
거북을 닮아 구담봉이라 한다.
조선인종 때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였는데 푸른
소를 타고 강산을 청유하며 칡넝쿨을 구담의 양쪽 언덕에 매고
비학을 만들어 타고 왕래하니 사람들이 이를 보고 신선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제비봉과 금수산, 멀리는 월악산이 감싸고 있어 충주호 수운관광의
최절경지로 손꼽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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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순봉 |
희고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 순 모양으로 천여 척이나 힘차게
치솟아 절개 있는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봉우리를 옥순봉이라
한다. 여러 개 기이한 봉들은 조화의 묘를 다하였으며 산세의
기복과 굴곡이 자유분방하다.
옥순봉은 원래 청풍에 속해 있었는데 조선 명종 때에 관기
두향이가 단양 군수로 부임하는 퇴계 이황 선생에게 옥순봉을 단양군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퇴계 이황 선생이 청풍부사에게 청을
하였으나 청풍부사가 이를 허락하지 않자 퇴계선생이 석벽에 丹丘洞門(단구동문)
이라는 글을 암각하여 이곳을 단양의 관문이며 군경계로 정했다고
한다. 뒤에 청풍부사가 남의 땅에 군계(郡界)를 정한 자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옥순봉에 가보니 글씨가 힘차고 살아있어서 누구의 글씨냐고
묻자 퇴계의 글씨라고 하니 감탄하면서 옥순봉을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옥순봉은 소금강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비경인바,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연산군 때 문신 김일손(金馹孫)도 이곳을 탐승하면서 절경의
협곡을 극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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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암 |
대강면 사인암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맑은 운계천을 따라 명명된
운선구곡(雲仙九曲) 중 제7곡에 해당되는 사인암은 우리고장 출신인
고려말 대학자 역동 우탁(易東 禹卓) 선생이 사인(舍人) 벼슬로
재직 할 당시 이곳에서 청유하였다하여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로
재임한 임재광 선생이 명명하였다.
수직으로 치솟은 석벽은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절로 자아내고
있으며 조선시대 화원인 단원 김홍도를 비롯하여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찾아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남기거나 석벽에 각자(刻字)
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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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암 |
단성면 대잠리 575지방도 아래 위치한 하선암은 삼선구곡을
이루는 심산유곡의 첫 경승지로 3층으로 된 흰 바위는 넓이가
백여척이나 되어 마당을 이루고 그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덩그렇게 얹혀 있어 가관인데 처음에는 부처바위(佛岩)로 불리다가
성종 때 군수 임재광이「선암」으로 고쳐불렀다. 후에 퇴계 이황선생이
하선암(下仙岩)이라고 하였다.
거울같이 맑은 물이 주야장천 흐르고 있고 물속에 비친 바위가
마치 무지개 같이 영롱하여「홍암(紅岩)」이라고도 한다. 봄철에는
진달래와 철쭉, 여름에는 운무,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적설노송이
절경을 이루어 조선시대의 많은 화원들이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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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선암 |
조선 효종조의 문신인 곡운 김수증 선생이 명명한 곳으로
삼선구곡의 중심지이다.
흰색의 바위가 층층대를 이루어 맑은 계류와 더불어 여름철
유람과 휴양지로서 최적의 절경을 이룬다. 골짜기로 흐르는 맑은
물속에서 쌍용이 승천하였다는「쌍룡폭포」가 있고 백색의 웅장한
2개의 바위가 있으니 하나는「옥염대」또 하나는「명경대」라 부른다.
옥염대 암벽에는 사군강산 삼선수석(四郡江山三仙水石)이라 대서특필한
각자가 있으니 이는 조선 숙종 43년 충청도 관찰사 윤헌주(尹憲柱)
선생이 특서한 것으로 사군이란 당시의 단양, 영춘, 제천, 청풍을
일컫는다.
도락산의 흰 바위와 노송이 느릿느릿 내려 있고 화강암석의
빛과 맑은 하늘의 구름이 중선암 물에 비쳐있는 절경에 반해 조선시대부터
수많은 명현 묵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아 현재까지 전해지는 바위에
각자된 이름만도 300명이넘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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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암 |
크고 널찍한 바위는 없으나 작고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서로
모여 있는 모습은 소박하고 정겨운 한국인의 이웃을 연상케 한다.
그 주위는 만장의 청단대석이 벽을 이루고 계수는 반석사이를
용출하여 평평히 흐르다가 좁은 골에 이르러서 폭포가 되니 그
음향은 우레와 같고 튀는 물방울은 좌우종횡하여 관광객의 옷깃을
적셔주니 그 즐거운 선경은 형용하기 어렵다. 양안의 기암과 밤낮없이
흐르는 계류의 청음은 울창한 숲에서 사방 우짖는 새소리와 함께
현유선객들의 탐승의 흥취를 돋워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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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 단양군관광 |